삼상 2:1-10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5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
9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열등감이 많은 사람은 떨림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스스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불안하고 열등하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움쳐들기 때문이다.
스스로 숙명론자처럼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원인은 어린 시절의 자아형성과 관련이 있다.
나에게도 여러 가지 열등감이 존재한다.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한 열등감도 존재한다.
그러한 부분들을 직면하고 맞닥뜨리고 깨지고 다시 채우고 하면서 진정한 나의 그릇은 커져가게 될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열등감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그 비밀들이 결국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극복해야만 한다. 상시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야 한다.
어떤 열등감들이 있을까? 많이 알아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행복해야 한다.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 (결국 이런 열등감의 기준은 남과의 비교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열등감을 깨닫고 디딤돌 삼는다면 열등감을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크리스천에게 열등감을 회복할 때에 알아야할 4가지는 무엇이 있는가?
1. 소속감 :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세상의 우상이 아닌 하나님의 소속이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해져야 한다!
2. 자부감 : 내가 나를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갖는다고 보는지의 척도이다. 결국 1번 소속감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예수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다. 우리는 가치있는 사람들이다.
3. 자신감 : 자신의 능력과 관련된 감정이다. 어떤 일을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나타낸다.
자존감 :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자존심 : 남에게 굽히지 않는 것. 품위를 지키고자 하는 것.
자만심 : 자신의 역량, 능력을 부풀리는 것.
4. 사명감 : 사명이 있기 대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셨다. 모든 크리스천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은사가 있다. 그러한 은사들을 하나님을 위해 쓸 거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활용할 거야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개인심리학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아들러는 모든 인간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95% 이상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열등감으로 인해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열등감으로 인해 망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들이 성공하는 사람이 될까?
바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깨닫는 사람이다.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 사람은 열등감을 디딤돌 삼아 올라가게 된다.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다. 사실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열등감을 느끼며 살라고 하신 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열등감을 느끼고 죄책감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내 안에 있는 인간적인 것들만 바라보며 살다보면 열등감이라는 괴물에게 잡아먹혀버리고 만다.
자기계발서 중에 자존감에 대한 책들이 굉장히 많다. 자존감이 굉장히 중요하며 그것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존감도 분명한 양면이 있긴 하다. 너무 높은 자존감을 가지게 된다면 나르시스트가 되어 교만하고 자만하게 되기 쉽다.
열등감도 마찬가지다. 열등감이 완전히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형인 지그문트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형은 굉장히 모범적이었고 착실했으며 머리도 굉장히 똑똑하고 건강했다. 그에 반해 알프레드 아들러는 구루병이 있었고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형의 그늘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 그럼에도 그러한 열등감을 직면하고 깨닫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에 개인심리학을 창조한 정신의학자가 될 수 있었다.
열등감은 완전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보면서 비교하기 때문에 더 고통을 받고 불행하게 점점 잠식되어 지는 것이다. 자신에게 가진 것에 집중하지 않고 남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것에만 집중을 한다면 이러한 열등감은 나를 성장시켜주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잡아먹는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자꾸 비교의식에서 모든 것을 실제가 아닌 왜곡된 시각으로(인지왜곡) 바라보게 된다면, 자존감은 점차적으로 낮아지게 될 것이고, 자신감도 떨어지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다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외면하게 되며 돌이킬 수 없는 열등감의 늪에 빠지게 된다.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계속 공격을 받았다. 이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이 계속해서 상처를 주는 경우 자존감이 굉장히 떨어지게 된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미워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다. 목적이 불분명하여 자신도 불안한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찬으로서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보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 생각을 대입해서 보려고 한다면 낮은 자존감으로 downgrade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영적인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인지하고 깨닫는 수밖에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 속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해야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하고 건강한 자존감이 회복되고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사랑해야 하며, 하나님과 기도하는 것을 사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생각하는 것이 세상과 똑같아지게 된다.
1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한나는 처음에는 침묵으로 기도를 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마음 속에서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슬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털어놓고 눈물의 시간들을 보냈을 것이다. 한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랬기에 뿔이 높아졌고, 열등감을 토로하고 극복했고 자존감이 높아졌다. 그랬기에 브닌나로부터 미움받을 용기가 생기게 되었다.
다윗도 미워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미워하라며 의연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노래를 불렀다. 결국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높을 수밖에 없고 미움받을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왜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하는가? 예배도 왜 드려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고 열등감을 극복하실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멘탈을 강화시켜 주시기 때문이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자존감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답답하고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이러한 자존감이 낮아지면 채널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 있게 되어서 다른 사람이 목적없이 한 말도 굉장히 큰 상처로 남고 나의 자존감은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나의 기도는 받아주셨는데 왜 우리의 기도, 나의 기도는 받아주시지 않으실까?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왜 내 기도만 안 들어주시는가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나는 한나처럼, 적어도 한나의 반의 반만큼은 기도했는지 물어야 한다. 심지도 않았는데 우린 곡식을 거둘 수 없다. 공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노력하지 않았는데 근육이 생길 수는 없다.
다 될만한 사람들은 될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욕먹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방감, Libero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야 자유롭게 자기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 수 있다. 외부에 채널이 있어버리면, 다른 사람이 나의 기준이 되어버리면 어떤 것을 성취하더라도 영원히 불행한 모습으로 살 수밖에 없다. 나의 본능대로 살아야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본능적으로 너무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무작정 뛰어들어라. 시도해라. 노력해라. 부딪혀라. 깨져라. 다시 일어서라. 그리고 또 달려라. 그러면서 점점 발전해나가고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는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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