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 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snake가 아닌 The serpent라고 쓰여져있다.외경에는 사탄으로 표현되어 있다.
뱀은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다.
뱀은 지혜의 상징이다. 하지만 사단이 뱀을 이용했다. 그렇게 교활하고 간교한 용도로 사주되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여기서 물어 이르되라는 표현은 현재형, 진행형 동사로 쓰였다.. 따라서 뱀은 여자에게 지속적으로 자주 물었고, 어느 정도의 친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절.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하노라 하셨느니라.
2장 16절을 보면 그냥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명하셨다. 동산 각종 열매를 먹되 선악과는 먹지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여자는 아담에게 명하신 이후에 창조되었기에 전해들었을 뿐이고, 따라서 그 명령에 대해서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4절을 보면 여자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180도 뒤집어버렸다.
5절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기를 보면 선악을 알게 될 줄을 이미 뱀은 알고 있었다. 뱀은 피조물이기에 당연히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다. 하지만 뱀은 뱀 자체가 아니라 사단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까지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닮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 인간들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로워지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6절. 여자가 본즉 먹음직도 하고(육신의 정욕) 보암직도 하고(안목의 정욕)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이생의 자랑) 하였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고 남편에게도 줬다. 이에 그들은 부끄러움 두려움을 알게 되어 죄에 대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느끼신 것들로 연관지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채찍질을 당하시며 피를 흘리며 골고다로 향하셨다.
자신들은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 이 무화과나무가 상징하는 바는 우리 스스로가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무화과나무잎은 뿌리에서 멀어져있기 때문에 결국 며칠가지 않아 말라버리게 되고 가릴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매번 가리고 또 가릴 수밖에 없다.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이제는 인간이 자기 판단이 생기게 되었다. 전능한 하나님과 달리 나약하고 두려움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8절. 바람이 불 때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셨다. 네가 어디있느냐? 이 부분에서 긍휼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임을 느낄 수 있다. 아담이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분명히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탓하거나 화를 바로 내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게 질문을 하신다. 어떻게 보면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죄를 고백하고 나오길 기대하셨다.
10절.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이 죄에 엄하신 공의의 하나님임을 알고 숨어있었고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먹은 이야기는 쏙 빼놓은 채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만 한다. 지극히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다.
11절. 선악과를 네가 먹었느냐. 물어보시는 하나님.
12절. 하나님이 주셔서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그나무 열매를 내게 줘서 먹었다고 변명하는 아담. 결국 하나님을 탓하는 아담.
13절. 여자여 네거ㅏ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너의 할일을 잊었느냐. 창조에 따라 남자가 그릇된 길로 갈 때 바로 잡아주는 일을 하는 역할. 평등한 관점에서 권면 중보해야할 책임이 있었다. 그럼에도 여자는 뱀을 탓한다.
14절. 뱀에게는 바로 처벌을 내리셨다. 인간과 달리 짐승에게는 차별을 두셨다. 네가 이렇게 했으니 흙을 먹을지니라. 기어다니며 먼지와 티끌을 먹게 될 뱀.
15절. 내가 너로 ~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 원시복음이라고 한다. 최초로 하나님이 복음을 제시하셨다. 예언하셨다.
16절. 과거에 임신하는 고통이 없진 않았다. 전에도 있었으나 크게 더하여서 고통이 심해진 것을 알 수 있다.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갈망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하하시고고
여기서 다스린다는 표현은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여기까지 여자는 남자와 평등한 존재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호보완이 되는 관계였다. 아담은 모든 동물들에 이름을 지어줬으며, 결국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로 인해 하와라고 불림을 받게 되었다. 여기서 하와란 생명이란 뜻으로 수많은 생명을 낳게 된 것을 나타낸다.
남자는 과거에는 성스러운 노동을 했다. 에덴에 있는 동산을 경작하여 지키는 일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고통스럽고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21절. 가죽옷을 입히셨다. 무화과나무는 쉽게 시들고 완전히 자신들의 부끄러움, 두려움, 나약함, 죄성을 가릴 수 없다. 하지만 가죽옷을 하나님께서 손수 지어입히심으로 우리의 죄성을 반영구적으로 완전히 가릴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장차 오실 예수님을 보내신 성부하나님의 따뜻하고 무한한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2절.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결국 인간은 선악을 아는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같게 되었다.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이를 통해서 죄인의 몸으로 생명 나무 열매를 먹고 영생하는 것을 막으셨다.
에덴동산을 쫓겨난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 영생할까봐 그런 것이고, 두 번째로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이 과연 지구에 존재할까? 의미없는 질문이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히말라야 꼭대기에서 조개화석이 발견될 정도로 엄청나게 갈아엎으셨다. 따라서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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